말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하루의 감각
※ 이 글은 오랜 기간 해외에서 생활해 온 한 한국인이, 시간과 거리의 간극을 두고 바라본 한국 사회에 대한 개인적 관찰을 바탕으로 한 기록입니다. 한국 사회는 지역·세대·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여기 담긴 시선이 모든 한국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한국에 온 이들 가운데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하루가 정해진 레일 위에서 굴러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몇 시쯤 거리가 붐비고, 언제쯤 조용해지며, 어떤 행동이 자연스럽고 어떤 행동이 어색한지까지도 금세 감이 잡힌다고 말한다. 그 감각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이 질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누군가가 크게 지시하지도 않고, 표지판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비슷한 속도로 하루를 통과한다. 마치 서로 약속한 적은 없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의 출근 시간 지하철을 떠올려 보면 이 보이지 않는 틀의 한 단면이 드러난다. 줄을 서는 위치, 문이 열릴 때의 움직임, 자리를 양보하는 순간의 타이밍까지도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누가 규칙을 읽어 주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쓰는 듯 보인다. 붐비는 공간이 매일같이 큰 혼란 없이 작동하는 배경에는, 눈에 보이는 통제보다는 반복된 경험 속에서 형성된 공통의 감각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양상은 주거 공간에서도 관찰된다. 늦은 밤의 소음, 쓰레기 배출 시간, 엘리베이터에서의 거리감 같은 것들은 규정집보다 먼저 몸에 배어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가 불쾌해할 수 있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 발쯤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물러남이 계속 쌓이면서, 일상은 일정한 틀을 갖게 되는 듯하다.
이러한 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의 도시 지역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조건에 놓여 있었다. 밀집된 주거, 빠른 도시화, 공동체적 책임감이 반복되면서, 서로의 움직임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이 필요해졌을 수 있다. 명확히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기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차리는 신호들은 그렇게 일상 속으로 스며든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보이지 않는 틀은 다른 사회에 놓였을 때 더 분명해지기도 한다. 오랜 시간 유럽에서 생활하며 느낀 점은, 공공 공간에서의 ‘눈치’라는 감각이 작동하는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명시적 규칙이 없어도 “이건 하면 안 되겠다”는 선을 먼저 그리는 반면, 많은 서구 사회에서는 “명확히 금지되지 않으면 괜찮다”는 기준이 더 일반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쪽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배려 사이의 균형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이 유럽의 공공 공간에 처음 접하면 그 ‘여유로움’이 때로는 무질서로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유럽인이 한국에 오면 ‘정돈됨’이 때로는 숨막힘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외부에서 보면 이러한 모습은 종종 경직된 것으로 읽힌다. 개인의 선택이 좁아 보이기도 하고, 규칙이 과도하게 많은 사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이 틀이 강요라기보다는, 서로를 번거롭게 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에 가깝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무엇을 해도 되는지보다, 무엇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알려 주는 장치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 보이지 않는 틀이 언제나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낳기도 하고, 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차가운 시선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같은 사회 안에서도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세대에 따라, 개인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상이 큰 충돌 없이 이어지는 배경에는, 이 느슨하지만 단단한 구조가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도시 일상은 그래서 늘 조용히 정리되어 있는 듯 보인다. 눈에 띄는 규칙보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기준들이 하루를 지탱하는 경향이 있다. 이 보이지 않는 틀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면, 겉으로 드러난 행동들 너머에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한국의 일상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