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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오랜 기간 해외에서 생활해 온 한 한국인이, 시간과 거리의 간극을 두고 바라본 한국 사회에 대한 개인적 관찰을 바탕으로 한 기록입니다. 한국 사회는 지역·세대·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여기 담긴 시선이 모든 한국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밤 10시, 꺼지지 않는 불빛의 정체
늦은 밤, 도심의 빌딩 숲에는 좀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다. 사무실의 형광등이 아니라, 아이들이 앉아 있는 책상 위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다.
이 장면을 처음 마주한 외국인들은 종종 묻는다. “이 시간에도 아이들이 공부를 하나요?”
대답은 간단하지만, 설명은 쉽지 않다. 한국의 주요 학군에서 이 불빛은 예외적인 풍경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히 여겨지는 하루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과열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열정이라 이름 붙인다. 그러나 그 창 아래를 가만히 지나가다 보면, 이것이 단순한 개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찾아온다. 오히려 아주 오래전부터 작동해 온 질서, 정교하게 맞물린 거대한 톱니바퀴의 소음에 가깝다.
무너진 터 위에서 던진 유일한 밧줄
한국에서 교육은 늘 개인의 문제가 되기 전에 구조의 일부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이 사회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500년 이상을 이어져 온 유교적 질서는 무너졌고, 식민지의 시간과 이어서 치른 전쟁은 그 잔해마저 흩뜨려 놓았다.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나라 전체가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땅도, 자원도, 기술이나 자본도 기대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다음 세대로 건네줄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교육은 지식을 쌓는 과정이라기보다, 무너진 집터 위에서 다음 세대가 붙잡을 수 있었던 가장 단단한 밧줄에 가까웠다.
그 어려운 시기 부모들은 자신의 등을 굽혀 자식의 발판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교육은 개인의 성장 서사를 넘어, 가족의 생존과 사회적 신뢰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고 같은 규칙을 따라야만 공정하다고 느끼게 된 것도, 그 시절 우리가 믿고 기댈 수 있었던 것이 사실상 그런 기준밖에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안도감을 주는 차가운 질서
이 질서는 맨주먹으로 시작했지만, 공부를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성공 신화를 만들어 냈다. 8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지금 한국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일상의 리듬 속에 깊이 남아 있다.
학기 초에 나눠주는 시간표, 시험 날짜를 중심으로 다시 배열되는 하루, 방과 후가 되면 또다시 켜지는 교실과 학원의 불빛.
오후 10시가 되면 대치동 같은 주요 학원가의 도로가에는 비상등을 켠 차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늘어선다. 아이들은 썰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부모들은 그 짧은 순간에 아이의 가방을 받아 트렁크에 싣는다.
서구권에서 온 학생들이 가장 감을 잡지 못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공부의 방식이나 시험의 난이도보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넘어 사교육까지 더해 하루중 이렇게 긴 시간을 학습에 쏟는다는 사실이다.
시험 기간이 아니어도 그렇게 이어지는 학습이 일상이라는 점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이 흐름 속에서 사교육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감내의 영역이 된다. 많은 가정에서 주거비 다음으로 큰 지출이 교육비가 되기도 하고, 부모들은 자신의 생활을 줄여가며 이 계단을 아이와 함께 오른다.
감당하기 벅찬 비용임을 알면서도 “여기서 멈추면 아이가 불리해질까 봐”라는 말이 결정의 마지막에 남는다.
오랫동안 이 구조를 떠받쳐 온 것은 질서가 주는 안도감이었다. 시험은 차갑지만, 기준만큼은 같다는 믿음. 들인 시간만큼은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질서가 엄격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예측 가능성에 몸을 맡겼다.
불안이 가리키는 가장 안전한 방향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이 계단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이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넣는다는 말, 사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집안이 점점 유리해진다는 불만, 인공지능의 시대에 아이들의 창의성을 망친다는 우려까지.
대학의 줄 세우기가 수명을 다해 가고 있다는 경고 역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의문이 제도 밖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장 많은 교육을 소비해 온 부모들, 그리고 그 질서를 통과해 온 학생들 스스로가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또 하나의 풍경이 눈에 띈다.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이 의대라는 좁은 문 앞에 몰려 서는 장면이다.
앞날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고,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길로 쏠리는 현상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 분명해진다.
이 모습을 두고 이공계 기피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비난에 가까운 시선이 동시에 등장한다. 한편으로는 미국, 중국, 인도에서 이공계로 진학해 새로운 산업과 세계를 열어 가는 또래들의 흐름을 부러움 섞인 눈길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대비의 이면에는 보다 근원적인 감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좁은 땅, 많은 인구, 자원도 완충 장치도 넉넉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앞날을 쉽게 기약할 수 없다는 불안.
그 불안이 교육을 계속해서 가장 안전해 보이는 방향으로 밀어 왔는지도 모른다.
해방 이후 8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사회는 쉼 없이 달려왔다. 성장은 분명했고, 성과는 눈부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속도의 이면에 드리운 그늘이 조금씩 실감 나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압박은 밀도를 만들고, 질서는 예측 가능한 내일을 약속하며, 기대는 계속 오르게 만든다.
하지만 이 가파른 계단이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만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망설이고 있다.
모두가 뛰고 있는 풍경 속에서는 잠시 멈춰 서 있는 것조차 불안하다.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창가를 바라보며 정답 없는 질문 하나를 마음속에 남겨 둔다. 이 질서가 어디에서 왔는지뿐 아니라, 어디까지 유효할 수 있을지를 묻기 위해서.